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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스 ep.10] 사라진 사람들

by 스토리랩 권프로 2025.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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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때부터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책임감은 컸지만, 말로 내 의견을 표현하는 데에는 늘 서툴렀다. 
직장에서도 그런 나의 성격은 더 뚜렷해졌다. 항상 "네"라고 대답하고, 다른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그 결과 내 삶은 점점 더 무겁고 답답해졌다.

내가 처음으로 "그 일"을 경험한 건, 25살이었다. 
회사에서 날 가장 괴롭히던 상사가 사라진 날이었다. 
그날은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상사는 회의에서 내 실수를 끄집어내며 모두 앞에서 나를 모욕했다. 
머릿속은 하얘졌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억울하고 화가 났지만, 늘 그랬듯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회의실을 나와 화장실로 도망쳤다.
나는 거울을 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그는 회사에 나타나지 않았다.
처음엔 그저 휴가를 간 줄 알았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그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동료들에게 물어보려 했지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 사람 어디 갔어요?"

내 질문에 동료들은 멍하니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누구 말하는 거야? 우리 팀에 그런 사람은 없는데."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상사의 존재를 기억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의 이름, 목소리, 표정이 모두 내 머릿속에 생생했지만, 세상 어디에도 그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일이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내 인생의 또 다른 중요한 사람이 사라졌다. 오래된 여자친구가 나를 떠났다.

"우리 여기까지 하자."

그녀는 갑작스럽게 이별을 통보했다. 
이유는 없었다. 
아니, 이유는 나름 있었다고 그녀는 말했지만, 그 말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진 않았다.

"우린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아."

나는 혼란스러웠다. 
물론 서로 소원해진 건 맞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끝낼 만큼의 문제는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떠난 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억울함과 분노에 몸을 떨었다.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다음 날, 그녀도 사라졌다.

그녀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휴대폰에 남겨진 메시지, 그녀와 찍었던 사진, 그녀의 이름조차도 모두 사라졌다. 
주변 사람들 역시 그녀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내가 힘겹게 꺼낸 이야기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저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그런 사람, 들어본 적도 없어."

나는 미칠 것 같았다. 상사가 사라졌을 때와는 달리, 이번엔 더 큰 공허함이 느껴졌다. 
그녀의 존재를 기억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내가 잘못된 걸까? 아니면 이 세상이 잘못된 걸까? 나는 며칠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녀와의 추억이 사라지기 전에 하나라도 더 붙잡아야 했다. 
그녀가 남긴 흔적들,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 함께 찍었던 사진들을 찾아 나만이 알아볼 수 있는 증거를 모으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세 번째 사람이 사라졌다.

회사 동료였다. 그는 내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날, 사소한 말다툼 끝에 그는 내 감정을 건드렸다.

"네가 일을 그렇게 하니까 다들 너를 싫어하는 거야."

그 한마디에 내 안에 억눌려 있던 감정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화장실로 뛰어가 거울을 마주했다. 그리고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그 다음 날, 그는 사라졌다.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사람들이 사라지는 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들은 내가 억울함과 분노를 억누르고 눈물을 흘릴 때마다 사라졌다.
그리고 그 이유는 나 자신이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이것이 나의 의지로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때마다 누군가 사라진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내가 억울함을 느끼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나는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것은 점점 나를 고립시켰다. 나는 누구와도 깊이 관계를 맺지 않으려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더는 버틸 수 없었다. 
사람들이 사라지는 이 이상한 일에 대해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 했다. 를 끝으로 말을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었다.



낯선 얼굴의 의사가 내게 말하고 있었다.

"이 모든 건 당신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환상일 가능성이 큽니다. 당신은 아무도 사라지게 하지 않았어요."

나는 그 말을 듣고도 선뜻 믿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보고 느낀 모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여전히 그녀를, 그리고 그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의사는 종이에 정신 착란 증세 있음 이라고 정상 참작 사유 란에 기재하면서 상담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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