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달 정도 남은 결혼식 청첩장 모임으로 정신 없던 나날이었다.
오늘은 여자친구의 청첩장 모임에 잠깐 들를 계획이었다. 간단하게 인사만 하고 나와서 작품 전시 준비 중인 현장에 가서 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이처럼 나는 파워 J로 계획 짜는 걸 좋아한다. 그때, 그녀를 만났다. 아니 다시 만났다가 맞는 표현이다. 나에게 특별한 인연이 있던 그녀가 여기서 볼 줄은 몰랐다. 우리가 만난 순간은 너무 아련했다. 그리고 특별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몇 년 전, 영국 런던 외곽의 한 작은 카페에서였다.
그때 나는 홀로 여행 중에 우연히 그녀와 마주쳤다. 나는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고, 밧데리 나간 휴대폰으로 멘붕이 왔었다. 그녀는 그때 카페 테라스에서 우연히 나와 마주친 유일한 한국 사람이었다. “아, 길이 좀 헷갈려서요, 휴대폰도 꺼졌고.” 내가 어설프게 말을 건넸고, 그녀는 웃으며 도와주겠다고 했다. 우리가 나눈 대화는 별거 없었지만, 그 순간 오직 그녀와 나만 남은 듯했다. 그녀는 일행이 있었다. 그래서 더 얘기하지 못했다. 용기가 없어 번호를 물어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구사일생으로 나를 구해준 사람의 뒷모습을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순간이 내 마음속에서 계속 울리며, 그때의 그녀가 계속 떠올랐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어느덧 그날의 추억은 잊혀져 갔다.
그리고 오늘 나는 다시 그녀를 만났다.
몇년이 지나도 똑같았다. 이전의 그 강렬한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그녀의 눈빛과 미소는 그때 그대로였고, 나는 그 순간의 시간이 다시 흐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잠깐 화장실을 다녀온 여자친구가 뒤에서 다가왔다. "서로 아는 사이야?" 라는 식의 여자친구 질문에 사실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그렇게 모임은 시작되었고 머리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시선 처리가 불편해보였다. 화장실을 간다고 일어 난 뒤, 거울을 보며 마음을 다 잡았다.
나오는 길에 그녀가 뒤따라 오다 우리는 다시 마주쳤다.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네요. 휴대폰은 잘 충전하고 다니시죠?" 그녀가 내게 다가오며 짖굿게 웃었다.
그때와 같은 따스함과 편한함 그리고 아름다움이 묻어 있었다.
나는 조금 당황하며 대답했다.
"기억 하네요 역시. 정말, 우연이네요. 영국에서 만난 게 벌써 몇 년 전인데. 그때는 정말 고마웠어요"
그녀는 잠시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그 카페 기억나요? 그때도 당신은 길을 잃고 해메고 있었죠."
그 말에 나는 웃었다.
"그렇죠.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이에요, 현진이랑 친구일줄은 몰랐어요!"
"그냥, 우연히 최근에 친해졌어요." 그녀는 짧게 대답한 뒤, 그때처럼 다시 웃었다.
그 순간, 나는 그때 우리가 나눈 짧은 대화들이 계속해서 내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 중이었다.
나는 자리로 그녀는 화장실로 향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