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탕 데이트를 마치고 우진은 내일 출근을 위해 주희를 역까지 배웅해 주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녀와의 행복한 데이트는 항상 행복한 여운을 남겨주곤 했다. 특히 오늘은 누가 봐도 나는 무척 행복해 보였음에 틀림이 없다.
내일 출근만 아니었으면 주희와 함께 손 잡고 걸어왔을 거리가 유독 춥게 느껴졌다. 자취방에 도착하여, 거실 불을 켜고, 보일러를 적정 온도로 올렸다. 올해는 짠돌이 우진도 보일러를 참을 수 없는 겨울이다. 그때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아쉽게도 주희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전화는 늘 불편한 감정을 동반하기에 망설였지만, 결국 받게 되었다. 대화는 늘 그렇듯 서먹 서먹하게 시작되었다. 기일이 다가오니 어떻게 할지에 대한 상의를 하려고 전화했다는 말에 우진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불편한 기운과 불행함이 계속 뱃속에서 올라왔다.
"우진아, 다음 달 초 기일에는 어떻게 하려고 하니? 집으로 오렴"
"... 생각해 볼게요, 끊어요"
자연스럽게 이런 날에는, 엄마와 셋이 함께했던 가장 행복했던 어린 시절들이 먼저 떠올랐다. 여름날, 가족 캠핑에서 엄마가 아버지와 함께 불꽃놀이를 준비하며 웃던 모습, 바닷가에서 함께 낚시하며 웃는 모습 등.. 따뜻한 기억들이 너무나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 행복은 이제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이 되어 있다. 가장 불행한 순간에 찾아오는 반대의 행복했던 추억이 생각나지 않았으면 한다고 우진은 항상 생각했지만, 추억과 감정이 떠오르는 것을 조절할 수는 없었다.
불행한 때에 행복한 날을 되새기는 것은 잃어버린 행복에 대한 이중의 슬픔이 됩니다
<단테의 신곡 ; 지옥편> 중 프란체스카와 단테의 대화 일부
엄마의 극단적 선택이 있기 전까지는, 우진은 분명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이었다. 과거 엄마에게 아버지의 외도가 의심된다는 그 한마디를 했던 자신이 떠올랐다. 당시 우진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지만, 그 일이 엄마를 파멸로 몰고 갈 줄은 그 당시 우진은 몰랐습니다. 벌써 10년이 지난 일이지만 생생했다. 엄마의 극단적인 선택이 있던 날, 우진은 아버지와 응급실 보호자 대기실에서 만난 날이 생생합니다. 아버지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습니다. 미안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일이 있은 뒤 몇 년 뒤 기일에 결국 우리는 부자간 말싸움 있었습니다.
"네가 말하지 않았다면 이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야.. 내가 분명 오해라고 했잖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하실 수 있으세요? 그 모든 일은 바로 당신 때문이에요"
이라는 말을 서로에게 결국 내뱉었습니다. 결국 서로의 마음을 찢어놓습니다. 행복한 가족으로 서로를 위해 했던 행동이었다고 서로 생각했습니다. 한 명은 진실을 알렸고, 한 명은 오해가 커질 것을 우려하여 선의의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사실 우진은 꽤 오래전부터 스스로를 '엄마를 내가.. 그리고 아버지를 내가.. 우리 가족을 내가..'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차마 아버지와는 이 이야기를 다시 할 수 없었다. 스스로에 대한 분노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얽히며, 우진은 절대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또 다짐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우진은 결국 주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행복한 날이 떠올라도 해결되지 않는 슬픔이라도 그녀에게 기댈 수 있다. 조만간 주희에게 내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으리라 결심했다. 통화가 연결되자 우진은 행복한 주말 마무리를 그제야 할 수 있었다.